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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추사)의 유배 시절, 예술의 꽃은 외로움 속에서 피었다 김정희(추사)의 유배 시절, 예술의 꽃은 외로움 속에서 피었다 조선 후기에 가장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친 인물 중 하나인 김정희(추사).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예술가로, 조선의 서예와 문예 전반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이 절정에 이른 곳은 다름 아닌 유배지 제주도였습니다.정치적 격랑 속에서 좌천되고 쫓겨난 그는, 고립된 유배지에서 오히려 예술과 철학의 꽃을 피웠습니다.추사의 삶, 그리고 유배김정희는 1786년에 태어나 영조의 손자인 사도세자의 서손과 혼인 관계가 있을 정도로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어려서부터 학문에 밝아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제자가 되었고,청나라 연경(北京)을 다녀오면서 문자학, 금석학, 서예, 회화 등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시야를 넓혔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2025. 8. 3.
성혼과 이이의 사제 갈등: 조선판 엘리트 정치의 민낯 성혼과 이이의 사제 갈등: 조선판 엘리트 정치의 민낯1. 조선 중기, 불안정했던 정치와 국제 정세조선 선조 시대(16세기 후반), 나라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 들끓고 있었습니다.국내적으로는 조광조 이후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며 사림들이 정권을 잡았고,사림 간에도 학파가 갈라지며 당파가 형성되기 시작했죠. 국외로 눈을 돌리면,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했으며,여진족의 활동도 점차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외침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불안하다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등장한 두 엘리트 유학자.바로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입니다.2. 스승과 제자였던 성혼과 이이성혼은 조광조 학풍을.. 2025. 8. 2.
이이(율곡)의 군사 개혁안, 10만 양병설: 실현 가능했을까? 이이(율곡)의 군사 개혁안, 10만 양병설: 실현 가능했을까?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자 개혁가, 율곡 이이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1536~1584)는 많은 사람들이 '격몽요결'이나 '성학집요' 같은 유학서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정치 활동은 단순한 학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무너져 가던 국방 체계에 깊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실질적인 군사 개혁안을 주장하게 됩니다. 바로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군사 개혁안 중 하나, "10만 양병설"입니다.10만 양병설이란?이이가 주장한 10만 양병설이란, 평시에도 훈련된 10만 명의 상비군을 준비해 두자는 계획이었습니다.이는 단순히 병사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 2025. 8. 2.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만든 발명품들: 목민심서만 남긴 게 아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만든 발명품들: 목민심서만 남긴 게 아니다 유배를 기회로 바꾼 실학자, 정약용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흔히 《목민심서》의 저자로 기억됩니다.하지만 그를 단지 학문적 사상가로만 이해하면, 정약용이라는 인물의 절반만 아는 셈입니다.그는 정치가이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였습니다. 특히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그는 좌절하거나 침묵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 시간은 정약용이 가장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연구 성과를 쏟아낸 시기였습니다.그가 남긴 발명품들은 당시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대표 발명품 ① 거중기: 크레인보다 먼저정약용의 발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거중기(擧重機)’, 무거운 돌이나 자재를 들어 올리는 장치입니다.오늘날의 크.. 2025. 8. 2.
허균의 파격 사상과 금서 목록: 왜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나? 허균의 파격 사상과 금서 목록: 왜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나? 조선 시대, 보통 사람을 위한 사상가가 있었다? 조선은 신분이 엄격한 사회였습니다.태어날 때부터 양반인지, 중인인지, 상민인지가 정해졌고,심지어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서자(庶子)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인물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허균(許筠)입니다.《홍길동전》, 그냥 이야기책이 아니었다여러분도 한 번쯤 들어봤을 《홍길동전》,"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이 말은 바로 서자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허균은 이 이야기를 통해 "서자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셈입니다. 📌 예시로 생각해 볼까요?오늘날 회사에서 똑같이 일했는데, 부모가 .. 2025. 8. 1.
영조의 두 얼굴: 평민 출신을 중용한 왕의 진심은 무엇이었나? 영조의 두 얼굴: 평민 출신을 중용한 왕의 진심은 무엇이었나? 조선 후기, 개혁의 중심에 선 왕 영조는 조선 제21대 임금으로, 재위 기간만 무려 52년(1724~1776)에 달합니다.이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긴 통치 기간 중 하나로, 그만큼 많은 정치적 사건과 개혁이 뒤얽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조를 떠올릴 때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생각합니다.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아버지탕평책과 실용정치를 추진한 개혁 군주이처럼 영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특히, 신분이 낮은 인물들을 적극 기용했던 모습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정치 행보였고,지금까지도 ‘진심인가, 정치적 계산인가?’라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서얼과 평민, 차별을 깬 중용의 인사 정책영조는 노비의 아들로 .. 202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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