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과학의 황혼기: 장영실 이후 기술은 왜 퇴보했는가?
조선 과학기술 쇠퇴, 장영실 이후 과학, 세종 과학정책, 관상감, 조선 후기 기술

1. 찬란했던 세종 시대, 조선 과학의 정점
조선 전기, 특히 세종대왕(재위 1418~1450) 시기는 과학기술의 황금기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기의 과학 발전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정책과 행정, 실생활에 직접 적용되는 실용 과학이었습니다.
🔍 대표 사례:
- 측우기: 세계 최초 강우량 측정기
- 자격루: 자동 물시계
- 혼천의, 간의: 천문 관측 기기
- 농사직설: 백성을 위한 농서
이러한 성과는 천민 출신 과학자 장영실을 비롯해 많은 기술자들이 국가적으로 지원받았기에 가능했습니다.
2. 장영실의 몰락과 함께 무너진 과학의 기반
장영실은 세종의 총애를 받아 조선 과학의 중추를 담당했지만, 1450년대 갑작스럽게 실각합니다.
그 이유는 '어가 수리 실패'라는 단순한 기록뿐이며, 이후 자취를 감춥니다.
📉 장영실 실각 이후 발생한 변화:
- 관상감의 역할 축소: 과학적 관측보다는 점성술적 역할로 전락
- 과학기술자 멸시: 기술은 천한 것이란 인식 확산
- 과학자 양성 제도 붕괴: 국가 주도의 과학 교육 부재
장영실 개인의 몰락이 조선 과학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3. 성리학의 영향: 기술보다 문(文)
세종대 이후 조선은 점차 유교적 질서 강화와 성리학 중심 사회로 변해갑니다.
과학과 기술은 유학자들에게 “천한 기술”로 여겨졌으며, 문과 관료 중심의 행정체계는 기술자들을 소외시켰습니다.
📌 예시:
- 양반 관료들의 기술 무시: 기계나 측량을 다루는 자는 “장인(匠人)”이라 하여 경시
- 실학자들도 소외: 18세기 실학자들이 기술과 경제를 강조했지만 주류에서 외면당함
4.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화된 과학 쇠퇴
🔸 16세기~17세기: 명분론 강화와 전란
- 임진왜란(1592), 병자호란(1636) 등 국난이 과학기술의 지속을 방해
- 국방, 병기, 천문 등 필요한 기술 개발이 일회성에 그침
🔸 18세기: 실학과 개혁의 희망
- 정약용, 박제가 등 실학자들이 기술과 개혁을 주장했으나
- 중앙 정치에서는 여전히 문(文) 중심 행정 고수
| 구 분 | 내 용 |
| 장영실 시대 | 국가 주도 과학 시스템 존재, 기술자 존중 |
| 중기 이후 | 성리학 강화, 관상감 약화, 과학 경시 |
| 후기 실학기 | 민간 중심 기술 연구 증가, 국가 무관심 |
5. 기술이 아닌 천문 관측조차 점성술로 전락
조선 전기의 천문학은 계절 예측, 농업 정책, 해시계·달력 제작 등 실용성과 밀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관상감은 왕의 운세나 국가의 길흉을 보는 기관으로 기능이 바뀝니다.
📌 실제 예:
- 관상감의 관측 장비 고장 후에도 복구 안 함
- 실측보다는 명분에 맞는 해석을 중시
6. 왜 과학기술이 이어지지 못했는가?
원인 요약
| 요 인 | 내 용 |
| 정치적 이유 | 실용보다 명분 중시, 기술자 정치적 배제 |
| 제도적 한계 | 과학자 양성 시스템 미흡 |
| 사회문화 | 기술은 천한 것이라는 인식 |
| 외적 요인 | 왜란, 호란 등 전란으로 연구 단절 |
7. 다른 나라와의 비교: 왜 조선만 퇴보했을까?
같은 동아시아권에서도 명나라 말기~청나라 초기에는 서양 기술과 천문학을 도입했습니다.
일본 역시 에도 시대에 난학(서양학)을 받아들이며 근대화 기반을 쌓았습니다.
반면 조선은?
- 서학(천주교)과 함께 들어온 서양 과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차단
- 천주교 박해와 함께 서양 과학 지식도 묻힘
8. 결론: 조선 과학, 장영실의 시대에서 멈췄다
장영실이 구축했던 조선 과학기술의 기반은 세종 사후 무너지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에 들어선 왕조 체제의 고착과 문치주의는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실학자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시스템의 부재, 기술자 경시 풍조, 그리고 전란과 명분론의 반복이 조선 과학을 쇠퇴하게 만든 핵심이었습니다.
✅ 요약 정리
| 항 목 | 내 용 |
| 황금기 | 세종 시대, 장영실 중심의 실용 과학 전성기 |
| 몰락 | 장영실 실각 이후 과학기술 제도 붕괴 |
| 원인 | 성리학 강화, 문치주의, 사회적 인식, 제도 부재 |
| 결과 | 관상감 쇠퇴, 실학자 고립, 기술 발전 정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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