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음란서적과 금서 목록: 숨겨진 욕망의 기록

금기의 시대, 욕망은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조선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유교 사회였습니다. 인간의 사적 감정과 욕망, 특히 성에 대한 표현은 철저히 억압되었고, 국가 권력은 이를 금서 정책과 출판 검열로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억압이 강할수록 인간의 욕망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음란서적과 민간설화, 문학 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과 은밀한 상상력이 드러났습니다.
음란서적이란 무엇인가?
조선에서 음란서적이란 오늘날의 ‘포르노그래피’와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당시의 음란서적은 다음과 같은 범주를 포함합니다.
- 성적 묘사를 직접적으로 담은 이야기책
- 간통, 성적 일탈, 쾌락에 관한 주제의 소설 및 설화
- 부부생활, 육체적 관계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문
- 외설적 삽화를 포함한 필사본 또는 삽화집
이러한 책들은 국가에 의해 금서로 분류되었고, 소지하거나 유통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되었지만,
민간에서는 꾸준히 은밀히 필사되고 전파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음란 문학: 《양춘향전》과 《금오신화》
《양춘향전》 – 춘향전의 은밀한 이면
춘향전은 누구나 아는 고전이지만, 그 변형본인 《양춘향전(陽春香傳)》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양춘향전은 기존 춘향전의 줄거리를 따르되, 춘향과 이몽룡의 육체적 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비공식 문학입니다.
이는 성적 상상력과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변형 서사로, 당시에도 서민들 사이에서 몰래 회람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금오신화》 – 환상과 욕망의 경계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한문 단편소설집입니다. 겉으로는 불교적 세계관과 환상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 이야기에는 육체적 유혹, 성적 은유, 남녀 간의 탐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 등에서는 육체와 영혼의 경계, 사랑과 욕망의 충돌이 나타나며, 당시 문학에서 성적 표현이 어떻게 은유화되었는지 보여줍니다.

검열과 금서 목록의 실태
조선은 문서와 출판물에 대한 통제를 매우 철저히 했습니다.
사헌부, 사간원, 예조 등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금서를 감시했습니다.
금서 지정 기준
- 유교적 가치관을 해치는 성적, 이단적, 반정치적 내용
- 민심을 흩트릴 수 있는 풍자적 이야기나 삽화
- 이야기책(야담류) 중 성적 요소가 포함된 작품
금서 목록 예시 (추정 및 문헌 기록 기반)
| 서 명 | 내용 요약 | 비 고 |
| 《양춘향전》 | 춘향과 이몽룡의 성관계 묘사 | 민간 유통 금지 |
| 《패관잡기》 일부 | 기생과 남성의 육체적 관계 중심 이야기 | 필사본 중심 |
| 《정사》(精史) | 역사적 사건과 성적 스캔들 결합 | 유통 시 체형 가능 |
| 일본 번역본 등 외국 서적 | 성적 삽화 포함 | 천주교 탄압과 함께 묶여 금지 |
왜 음란서적은 계속 유통되었나?
국가가 금지한 책이지만, 민간에서는 필사와 구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성에 대한 본능적 호기심
- 성리학적 억압이 심할수록 은밀한 이야기, 외설적인 묘사에 대한 관심은 증가
- 삶의 피로를 달래는 서민들의 판타지
-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 금기의 관계를 문학을 통해 대리 체험
- 민간설화 및 구술문화의 영향
- 설화 속 성 묘사는 교육적 또는 해학적 목적과도 연결
민간에서 전해지는 성 묘사와 해학
조선의 성 표현은 문학뿐 아니라 민간 설화와 판소리, 민요 등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특히 성적 행위를 해학적으로 풍자하거나 풍류로 승화하는 문화는 오히려 검열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예:
- “그네 뛰던 처녀, 삿갓 쓴 선비와 눈이 맞아…”
- “지게꾼과 과부의 하룻밤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은 풍속화나 입담 형식으로 전승되며, 서민 사회에서 성이 단순히 음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 해학적 소재로 소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금서 너머의 인간적 욕망을 읽다
조선시대는 검열과 억압의 시대였지만, 그 이면에는 억눌린 인간 본성과 욕망이 문학과 설화의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음란서적은 단순히 ‘야한 책’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상상력, 현실의 반영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금서는 당시 지배 이념의 경계선, 그리고 민중의 심리적 해방구였던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검열 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지만, 과거 금서에 담긴 인간의 본능과 창작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유효한 교훈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