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실학자들이 본 세종의 정책
정약용 세종, 세종대왕 정책, 실학자 세종 평가, 조선 실학 사상

🧭 서론: 실학자들의 눈으로 본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과학기술 진흥, 제도 개혁, 백성 중심의 통치 등은 오늘날까지도 찬사를 받고 있죠.
하지만 후대 실학자들은 단순한 ‘성군’의 이미지를 넘어서, 세종의 정책을 실용과 민본(民本)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해석했습니다.
특히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세종의 통치를 단지 이상적인 군주의 실현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 가능한 정책 모델로 인식하고 분석했습니다.
📌 정약용이 본 세종의 통치 핵심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 인물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많은 개혁서에서 세종대왕의 정치철학을 여러 차례 인용하거나 언급했습니다.
1. 민본주의와 공공정신
정약용은 세종의 정책에서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는 마음’을 가장 높이 평가했습니다.
| 세종의 정책 사례 | 정양용의 평가 |
| 훈민정음 창제 | 백성에게 문자 교육을 제공하여 억울함을 줄이려는 민본 정신의 상징 |
| 신분에 관계없는 인재 등용 | 능력 중심의 공정한 인재 활용, 실학에서 강조한 meritocracy와 일치 |
| 농사직설·의서 편찬 | 생활 밀착형 정책으로 ‘실용’과 ‘복지’를 동시에 꾀한 정책 |
→ 정약용은 “정치란 무엇인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세종의 행정에서 찾았다고 밝힙니다.
2. 기술과 제도의 조화
세종은 자격루, 앙부일구, 측우기 등의 발명을 장려했고,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강수량 측정 기구였습니다.
정약용은 이를 높이 사며, 자신도 거중기, 농정 개혁안, 수리시설 설계도 등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기술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백성을 편하게 하고, 국가의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라 보았습니다.
정약용은 세종의 ‘과학 행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세종은 백성을 위하여 천문과 역법을 다스리고, 물의 흐름을 측정하며, 백성의 시간과 날씨를 예측하게 하였다.”
3. 법과 제도의 인간화
세종은 형벌 제도에서 형률의 관용과 실질적 정의 실현을 중시했습니다.
- 억울한 옥사를 줄이기 위한 신문 절차 개선
- 고문 남용 방지 및 법관 책임제 강화
- 태형·장형보다 교화를 중시한 처벌 체계
정약용은 《흠흠신서》에서 이를 모범으로 삼아, 조선의 재판제도를 ‘형식에서 실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실학자들이 세종에게서 배운 가치
🔹 유득공: “세종은 유학자이자 실학자”
18세기 실학자 유득공은 세종이 이론과 실용을 조화시킨 군주였다고 봤습니다. 그는 “경(經)과 권(權)을 아울러 다스린 사람”이라며, 실용과 이상을 통합하는 정치를 세종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박지원: “세종의 과학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중국의 기술력에 감탄하면서도, 조선의 르네상스가 세종 시절에 이미 도래했었다고 평합니다. 그는 세종의 과학 진흥이 단지 흥미나 자랑이 아니라 생활의 편리와 생산성 증가에 목적을 두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정약용의 글 속 세종 인용 예시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세종의 제도 운영을 거듭 언급합니다.
“세종은 율령과 전장(田莊)을 바로잡고, 6전(육조)의 기능을 나누어,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사람의 뜻을 얻었다.”
또 《목민심서》에서는 세종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훌륭한 목민관은 세종을 닮아야 하며, 그가 한 일은 다 백성을 위한 일이었다.”
📊 요약 정리: 세종의 정책과 실학자들의 관점 비교
| 정책 영역 | 세종의 주요시도 | 실학자의 평가 및 반영 |
| 문자 | 훈민정음 창제 | 민본 실천의 상징 (정약용) |
| 과학기술 | 측우기·해시계 등 발명 | 실용기술 강조, 거중기 개발 등 (정약용, 박제가) |
| 농업 | 농사직설 편찬, 곡물 보급 | 실학자들의 농정 개혁 이론 기반 마련 |
| 형벌제도 | 인권 중시, 무고 방지 | 《흠흠신서》에 계승 (정약용) |
| 인재 등용 | 신분 타파, 재능 중심 | 실학적 meritocracy 실현 모델 |
🧭 결론: 실학의 뿌리를 세종에게서 찾다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세종을 단지 ‘훌륭한 임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책을 통해 백성을 이롭게 한 정치가’, ‘기술과 제도를 아우른 실용주의자’, ‘조선형 실학의 선구자’로 평가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학은 단지 18세기 조선 후기만의 흐름이 아니라, 세종이 뿌린 씨앗에서 피어난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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