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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을 이겨낸 조선의 재상, 권균 – 장애를 넘어 나라를 이끈 우의정

by making-dreams 2025.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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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작을 이겨낸 조선의 재상, 권균 – 장애를 넘어 나라를 이끈 우의정

권균이 이조판서 집무실에서 발작을 참고 서류를 결재하는 장면


📜 서론 – 조선에서 보기 드문 ‘장애인 재상’

조선 전기, 신체나 건강상의 결함은 곧 정치 활동의 한계로 이어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간질(뇌전증)이라는 중증 질환을 가지고도 조선의 인사 행정을 총괄하는 이조판서와 국가 최고위직 중 하나인 우의정을 역임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권균(權堇, 1464~1526)입니다.
권균은 뛰어난 행정 능력과 청렴함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고, 장애를 극복한 조선 시대 관료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 출생과 성장

권균은 1464년(세조 1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문은 중류 이상의 양반이었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발작 증세를 보이는 간질을 앓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간질을 ‘귀신이 씌운 병’이라 불렀기에, 주변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권균은 병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하루 대부분을 서책과 붓 앞에서 보냈습니다.
발작으로 쓰러졌다가도 회복하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공부를 이어갔고, 친구들이 놀리면 오히려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이미 절반은 이긴 것이오.”


📚 과거 급제와 정치 입문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한 그는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발작으로 관청 회의 도중 몸을 떨며 쓰러진 적도 있었지만, 업무 처리는 누구보다 정확했습니다.
이조의 인사 기록부는 ‘권균이 잡으면 오탈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꼼꼼했습니다.


🏛 이조판서 시절 – 공정의 상징

이조판서는 오늘날의 인사혁신처 장관에 해당하며, 막강한 인사권을 쥔 자리입니다.
권균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습니다.

  • 출신보다 능력 중시: 문벌이 아닌 재능과 성품을 기준으로 인재 발탁
  • 청탁 거부: 친척, 친구, 심지어 정승의 부탁도 거절
  • 기록 보존: 모든 인사 변동을 문서로 남겨 투명성 확보

그는 간혹 발작으로 며칠 자리에 없을 때도 있었지만, 복귀하면 빠진 업무를 모두 확인하고 결재했습니다.


📌 일화 ① – 발작 중에도 도장 찍은 날

한 번은 중요한 인사안 결재 도중 발작 증세가 찾아왔습니다.
주변 관리들이 쉬라고 권했지만, 그는 손을 떨면서도 서류를 붙잡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손이 멈추면 나라 일도 멈춘다.”

 

그 날 이후, 이조판서 집무실에는 항상 물과 약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일화 ② – 백성들의 인사 청원

권균은 백성들의 호소에도 귀 기울였습니다.
지방 수령이 부당하게 면천(免賤)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는데, 한 노비 부부가 한양까지 와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권균은 이들을 직접 만나 사정을 듣고, 즉시 해당 수령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결국 부부는 자유민 신분을 되찾았고, 백성들은 그를 ‘곧은 재상’이라 불렀습니다.


📌 일화 ③ – 우정과 차 한 잔

그의 절친 중 한 명은 병조판서 출신의 문신이었는데, 권균이 발작 때문에 관직을 그만두겠다고 고민하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 병이 그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던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물러나려 하지 말라.”

 

이 말에 힘을 얻은 권균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관직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작은 다실에서 차를 마시며 정치를 논했다고 전합니다.


📌 일화 ④ – 일상의 습관

권균은 간질 발작을 예방하기 위해 매일 새벽에 가벼운 운동을 했습니다.
또한 식사는 늘 소박하게 하며,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했습니다.
동료 관리들은 “그의 밥상에는 늘 된장국과 나물 반찬뿐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권균의 주요 연보

연 도 사 건
1464 경기도 양평 출생
성종 대 과거 급제, 관직 생활 시작
연산군 대 간질 발작에도 불구하고 관직 유지
1510년대 이조판서 역임, 공정 인사제도 확립
1520 우의정 임명
1526 향년 62세로 별세

⚖ 권균의 리더십과 유산

  • 원칙주의: 친분이나 청탁보다 국가 이익 우선
  • 청렴성: 재산 축적보다 백성의 신뢰를 선택
  • 책임감: 병을 이유로 국정을 소홀히 하지 않음

그는 장애와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국가에 헌신했고, 오늘날 공직자의 모범으로 회자됩니다.


💡 오늘날의 시사점

권균의 삶은 “신체의 제약이 곧 능력의 한계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간질이라는 큰 장애 속에서도 그는 꺾이지 않았고, 공정과 청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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